방명록 첫화면으로 Korean English
  평론  
      윤난지    
      홍명섭    
      정헌이    
      강수미    
           
      에세이    
정헌이

미술비평

정헌이 미술비평

김주현의 탈 - 미니멀리즘 조각 2001

김주현의 자기확장법 - 관계 구축의 의미와 무의미에 관한 작은 생각 2005


서양 모더니즘 미술의 핵심에는 예술 작품의 자기 정체성 문제가 있다. 이 문제는 결국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 주는
자기 규정성으로서의 틀(frame)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현대 미술이 자기 정체성을
질문하는 방식이 틀을 가시화하기 보다는 물리적인 틀을 제거하거나 흡수해 버림으로써 오히려 틀을 문제시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작품이 조각대에서 내려오고, 레디메이드를 차용하고, 어느 장소에 위치함으로써
제도 자체를 문제삼는 현대 조각사의 과정에는 이러한 틀에 대한 반성이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어쨌든 모더니즘의 핵심 쟁점으로서의 틀이란 무엇인가를 한계짓고, 규정하고, 고정시키는 기재이기 때문에
이러한 틀에 대한 담론은 틀을 탈피하고자 노력하면서도 결국은 다시 새로운 틀을 이야기 할 수밖에 없는 시지프스적인
재귀성의 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김주현의 최근작업은 이러한 모더니즘의 본질을 아주 명증하고 간결하게 요약해 주면서도 다시 이를 흥미진진하게
해체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경첩을 이용하여 함석판을 이어 붙인 구조물인 김주현의 그리드는 고정된 그리드가 아니다.
언제라도 열고 닫아질 수 있으며 얼마든지 확장이 가능하다.

이는 부채나 병풍, 혹은 두루마리 족자 형식의 전통미술에서 볼 수 있는 틀의 개폐 가능성, 그리고 뜨개질바늘의 코에서
하나씩 하나씩 나와서 어느 틈엔가 목도리도 되고 스웨터도 되는 뜨개질의 유연성 등을 생각하게 한다.
<1-2-3-2-3의 구조로 펼쳐지는 16개의 날개><46개의 마름모꼴이 세 줄로 연결되는 원>
<20개의 계단으로 연결된 8열의 정사각형으로 이루어진 나선형의 원>등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김주현은 가능한 한 작가의 의도적 개입을 배제한 필연적인 구조물을 지향한다.

그런데 이 필연적인 구조물들은 절대로 냉정하지 않다. 용접이라는 '폭력적'인 방식 대신에 360도 회전이 가능한
경첩이라는 자유로운 접합 방식을 선택하고, '우물' 정도의 깊이'라는 친근한 규모에서 멈춘 이 구조물들은
그 어떤 숨결과 생명감마저 느끼게 한다. 그녀의 경첩은 더이상 무엇인가를 한계 짓고, 규정하고, 고정시키는 틀이 아니다.

더 이상 안과 바깥을, 내용과 형식을 나누고 구분하는 틀이 아니라 그 자체로 그러한 구분을 무색하게 하는
'틈'이고 '사이'이다. 그리고 이틈으로서, 사이로서의 틀은 틀 안에 있는 것만을 의식적으로 명료한 예술로
규정해 주는 고정적인 틀로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역동적이고 관계적이며 다의적인 '틀/작품'으로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