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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윤난지    
      홍명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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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수미    
           
      에세이    
윤난지

미술평론
 
김주현의 작품은 단순하다. 형태만 간결한 것이 아니라 작업에 임하는 태도도 꾸밈이 없다.
그는 소위 예술이라는 것을 장황한 이야기나, 넘쳐흐르는 정감, 천재적인 상상력 따위로 포장하는 것을 체질적으로 싫어한다.
그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물질의 본성과 그 작용, 그리고 그것들이 만나서 이루어내는 느낌들이 전부이다.
비닐로 만들어진 형틀 속에 부어진 석고는 단숨에 흘러내려가면서 자체의 무게에 의해서 구겨지고
가라앉기도 하여 순식간에 견고한 형태로 굳어버린다. 그것들은 입방체, 원뿔, 삼각뿔 등 기본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는 각각의 재료들이 고유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내도록 배려한다.
석고는 흐르는 듯한 매끈한 표면을 만들고 철판은 자체의 무게로 석고를 누른다. 석고는 팽창하려 하고 철판은
마치 그 의지를 제어하는 듯이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있다. 형태의 단숨함에도 불구하고 서구의 미니멀리즘에서와
같은 기계의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은 재료를 마치 유기체와 같이 다루는 그의 무의적인 태도에서 연유한다.
물에 갠 석고가 흘러가면서 만들어내는 자연스러운 주름과 팽창된 표면, 뾰족한 모서리들, 석고의 흰 표면으로
스며나오는 녹슨 철심의 붉은 빛 등은 숨막히는 건조함을 벗어나게 하는 여유를 준다. 나무판 위에
페인트를 붓거나 작은 육면체들로 이루어진 표면에 페인트를 흘러내리게 한 경우도 석고붓기 작업의 연장이다.
재료를 부어가면서 작가가 할 일은 긴장된 눈으로 형태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따라갈 뿐 이라는 수동성을
그는 기꺼이 받아들인다. 비닐 주머니를 벗기지 않은 작품들도 작업 중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그가 만든 형태들은 방석같기도 하고 확대한 알약 같기도 하고 어떤 것은 주사위를 연상시킨다.
그것들은 원래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편안하게 바닥에 놓여서 우리의 시선을 이끈다.
마치 나의 피부를 닮은 것 같이 부드럽고 주변의 물건과 익숙하다. 그는 일상 속의 참조물들을 굳이
부정하지도 않지만 그것을 전적으로 강조하지도 않는다. 그것들을 보는 이들의 눈 앞에 던져놓고 자신도
같이 지켜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작가와 작품, 그리고 관람자 사이의 공간은 상당히 넓게 열려져 있는 셈이다.
그것은 가볍고 여유로운 미소 같은 것들이 교차하는 일종의 유희의 공간이다.

이와 같은 유희의 감각은 공간을 크게 다루는 최근작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출발점이 되고 있다.
다만 그것이 이제는 작가의 의식 속에 더 큰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점이 다를 뿐이다.
종이를 원형이나 사각형으로 잘라 차곡차곡 쌓아 올려 원기둥이나 육면체를 이루는 종이쌓기 작업에서
우리는 마치 놀이에 열중한 어린이와 같이 얇은 평면이 부피를 만들어가는 단조로운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게 된다.
그 위에 올려진 철판은 공간의 한계인 동시에 시간의 매듭이기도 하다. 철판에 경첩을 달아 병풍처럼 움직이게 한
근작들에서 작가는 관람자와 공유하는 시간에 대하여 더욱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여기서는 자기완결적 공간을 형성하기 보다 주어진 공간을 분할한다는 건축적 태도가 더 많이 작용하고 있는데,
그 공간의 가변성과 일시성을 암시함으로써 접근의 심리를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김주현의 작품은 외견상 삶과는 전혀 무관한 곳에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상세한 수식어로 삶을
이야기하고 있는 작품보다는 우리의 감각을 예민하게 건드리는 면이 있다면, 그것은 거추장스러운 설명을
결벽에 가까울 정도로 떨어내버린 결과일 것이다. 그의 작품은 덧없는 삶에 대한 가장 간소하고 가벼운
따라서 어쩌면 가장 날카로운 메타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