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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y Complex
2003

김주현
 
쌓기 작업은 한 장 한 장의 종이가 쌓이는 과정에서 생기는
윤곽선의 미세한 차이에 관한 관심에서 시작되었었다. 먼지같이 작고 사소하던 얇은 종이들간의 밀림들이 쌓이고 쌓여서 처음 한 장의 종이와는 딴판인 결과를 초래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었다. 전지 크기의 종이 작업의 경우에는 그 결과가 전체 형태를 통해서 드러나기도 하였지만, 종이 쌓기 작업의 온 관심은 결국 쌓아지는 패턴이 분명히 드러나는 종이의 단면에 집중되게 마련이다. 이에 나는 쌓기 문제를 단순화하기 위한 방법으로써 큰 종이의 무게와 부피를 생략하고 한동안 약 2cm가량의 얇아진 종이 단면 쌓기에 몰두하게 되었다. 종이의 단면 쌓기 연구 중 가장 나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복잡한 사각 구성` 시리즈인데 이 작업에서는, 종이가 모여서 크기나 비율이 일정하지 않은 사각형 단위가 되고, 거의 무작위로 선택 조합된 십여 개의 사각형들이 복잡해진 윤곽을 가진 상위 구조를 이루고, 다시 또 이러한 구조가 여러 개 조합되어 전체적으로 꽤 크고 복잡한 구조체가 되어 여러 차원의 상관 관계가 드러나고 있다.

최근에는 길이가 서로 다른 종이를 일정한 두께로 쌓아서 만든, 일종의 종이 막대를 배열하여 윤곽선의 변화를 살피는 작업을 하였다. 종이를 일정 두께의 쌓여진 단위로 만드는 과정에서 한 장의 종이의 의미는 퇴색한다. 이렇게 단위화된 종이에 있어서 변화할 수 있는 유일한 요소는 길이이다. 이제 종이 막대는 각목이나 사각 파이프로 대치될 수 있다. 문제를 간단히 하기 위해서 아직은 단면 안에 머물면서 할 수 있는 일은 서로 다른 길이의 종이 막대가 쌓이면서 만들어내는 계단 형식의 윤곽선의 형태를 주시하는 일일 것이다. 이 때 매끈한 단면과 외부 윤곽선으로 한정되는 작품의 지루해질 위험성을 피하기 위해서, 길이를 덧붙여 대는 틈을 이용하여 면에 정사각형태의 구멍을 만드는 수가 있다. 구멍들은 면 전체에 분포된다. 이런 구멍들이 한데 모여서 적극적으로 형태를 만들면 외부뿐 아니라 내부에도 어떤 윤곽선을 가진 큰 구멍이 생기게 된다.마치 육지 속의 호수 같은 형상-반대로 호수 속의 섬 같은 이런 내부의 윤곽선은 그 수가 점점 늘어나 화면 전체를 채운다. (신기하게도 내부와 외부에 복잡한 윤곽선을 가지는 이 작품들은 나의 최근의 경첩 작품과 거의 같은 패턴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종이 쌓기와 경첩 연결하기라는, 한 때는 너무 다른 유형의 작업인 것 같아서 나 자신조차 의아해하던 두 수법이, 많은 단위의 중첩에 의해 발생되는 자연스러운 형태라는 공통된 교차점에서 서로 만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 종이 단면은 더 이상 2차원으로 느껴지는 면을 대변하고있지 않다.- 이 단면이 2cm의 두께를 가진 종이가 쌓여진 옆면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면 처음부터 단순한 2차원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2차원을 교묘하게 가장하려는 입체였다고 할까. 우리는 점이라는 0의 차원에서 시작해서 선, 면, 입체에 이르는, 기하학에서의 3차원 과정을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평면적이라고 느끼는 것을 2차원, 그리고 실세계에서 접하는 사물들을 3차원이라고 부르기를 별로 주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2차원의 면이 한 번 접혀서 구부러진 상태는 몇 차원이라고 부를까? 종이 접기의 많은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꽤 단단한 형태가 되어진 종이는? 아니면 평면에 구멍을 뚫어서 아래 윗면을 자유롭게 관통시킨다면 , 그리고 이 구멍이 하나가 아니라 무수히 반복된다면, 혹은 그것이 2차원의 면 위가 아니라 이미 복잡한 구조를 가진 여러 차원의 구조물에 뚫리는 무수한 구멍이라면 우리는 그 차원을 무엇이라고 이해할 것인가?
나의 경첩 작품들은 높낮이에 다소 차이가 있긴 하지만 하나같이 위에서 단면의 구조를 들여다보도록 만들어져 있다. 옆면에서는 그저 다면체처럼 보이지만 윗면에 무수한 구멍을 가지는 이런 구조체를 몇 차원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아니면 처음엔 2차원을 가장한 평면이었다가 여러 개의 구멍에 의해서 입체성이 드러난, 그래도 여전히 상당히 평면적으로 보이는 종이 막대 작품의 구조는 몇 차원이라고 부를까?

수학자들은 2차원과 3차원의 중간에 위치하는 어떤 상태를 정교하게 계산된 소수점 차원으로 표현한다. 혹은 계의 원소들이 속하는 서로 다른 수준의 상관관계를 나타내는 상관차원은 요소 N개에 대해 N-1차원으로 표현한다. (상관차원은 우리에게 익숙한 기하학적 차원과는 다르다.) 차원을 한없이 세밀하게 미분할 수 있다는 것과, 반대로 무한한 수로 확장할 수 있다는 수학자들의 생각은 구조에 대해 한정된 이해를 가지고있던 나에게 이미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차원의 모든 장을 자유롭게 통과할 수 있도록 허가증을 쥐어준다. 어쩌면 나에게는 이 책들을 쓴 훌륭한 수학자들보다 유리한 여행 조건이 있다. 수많은 식솔을 거느리고 뒤에 자기를 따를 자들을 생각해서 일일이 지도를 그리고 기록을 남겨야 하는, 게다가 더 무서운 일은 자신의 생각을 증명해야 하는 무거운 짐을 진 수학자들에 비해서 나는 매우 가벼운 몸으로 미지의 땅을 탐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드시 그럴 것은 아니지만 비옥한 땅으로 통하는 오솔길을 찾아낼 지도 모를 일이다. 차원에 관한 여러 가지 고찰을 접하는 것과 그것을 내 작업에 다양한 방식으로 적용시키는 것은 정말로 재미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위장적인 평면을 다시 본격적인 입체로 환원시키기로 한다. 게임의 규칙은 단 한 가지이다.
가장 단순한 방식으로 가장 복잡한 구조를 만들어내기.

서로 길이가 다른 사각 파이프들이 쌓여지면 들쑥날쑥한 외부 윤곽선을 가지는 하나의 면을 얻을 수 있다. 이 면은 파이프가 쌓이는 구조로부터 생기는 가로 방향의 무수한 분절을 숨기고 있다. 이제 어떤 파이프와 파이프가 연결되는 한 점을 택해서 그 점을 세로로 가로지르는 축을 취하고, 그 축을 중심으로 파이프들을 회전시키면 그 점을 기점으로 감추어졌던 가로 분절이 드러나면서 전체의 면은 서로 다른 각도로 뒤틀린 두개의 면이 된다. 이미 회전된 면 중 한 파이프의 다른 어느 한 점을 택해서 축을 만들고 다시 회전을 시킨다. 이 과정을 거듭한다, 한 열 번. 그러면 처음에 밋밋한 한 면이었던 파이프 군은 정신없이 복잡한 각도의 여러 면을 가진 구조체로 변신한다. 단지 회전이라는 요소만을 사용해서 평면적인 작품을 입체화하는 것이다.

Multi-Body-Problem 다체문제-2를 위한 도면

도면을 그리기 위해 조감도를 작성해보면 이 구조는 거리가 서로 다른 두 점 사이를 잇는 여러 개의 선들이 서로 다른 각도로 연결되어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발견되는 것은 약 스무 개의 선들이 서로 교차되어 다각형을 이루고 그 안에 무게중심을 유지하기 위해서 점들이 서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임의적으로 선택된 길이의 선들의 집합과, 마찬가지로 임의로 취해지는 점들의 간격이 매우 임의적인 각도로 서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한 점과 한 점간의 관계가 곧 다음 점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고 그렇게 해서 발생하는 선분과 그 다음 선분과의 관계를 특정한 각도 내에 한정한다. 완전히 임의적인 규칙에 따르려는 과정의 결과가 완전히는 커녕 별반 임의적이지 않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여기에서 사용된 임의성에는 개별의 요소를 일련의 관계로 묶어 하나의 전체로 통합시키려는 목적성이 강하게 개입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일에 대해 예상되는 것과 정반대의 결과를 얻게 되는 정도를 놀라움의 창발성이라고 말한다. 놀라움의 창발성은 단순복잡성이라는 용어 자체에도 이미 내재되어 있다. 단순복잡성이란 무엇인가.

우리들은 관찰을 쉽게 처리하기 위해서 간단한 규칙이나 모형으로 압축하려는 노력을 한다. 어떤 대상을 기술하는데, 대상 그 자체보다 더 짧은 규칙이나 언설이 존재하지 않을 때, 즉 압축 불가능할 때, 그 대상 또는 패턴은 복잡하다라고 한다. 그런데 복잡성에 대한 개념은 독립적으로 선택된 하나의 체계에 내재하는 본질적인 측면이 아니라 두 개체 사이의 상호 작용으로 나타나는 특성에 더 가깝다. 복잡성은 반드시 기술 불가능하거나 불확정한 규칙에서 초래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이미 잘 알려진 출발점에서 결정론적 규칙을 적용하더라도 불가해한 결과를 발생시킬 수 있다.
3체 문제(Three-Body-Problem)로 알려진 달/지구/태양으로 이루어진 계의 운동에 관한 동역학 함수는 뉴턴이 깔끔하게 풀었던 2체 문제와는 전혀 달리, 보다 단순한 문제들로 분해하는 방법으로는 결코 해답을 얻을 수 없음이 증명되었다. 단순한 하위계에서의 상호작용의 결과로서 예상하지 못한 복잡성이 나타나는 좋은 예이다. 초기에 입력되는 수의 아주 작은 차이가 어떤 불안정한 계에서는 엄청난 차이의 결과를 초래한다는 나비효과나, 순전히 결정론적인 규칙에 의해서 완전히 무작위적인 것처럼 보이는 움직임을 일으키는 카오스적 체계 역시 복잡한 움직임이 반드시 복잡한 동역학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달해준다. 단순복잡성이란 환원론에 의해 설명되지 않는 복잡한 자연현상과 사회현상을 그 세부 요소들의 상호작용을 종합 분석함으로써 설명하려는 노력이다.

나는 이번에 내가 탐구한 쌓기-단면작업과 사각 파이프-입체작업의 관계 역시 단순히 환원적일 수 없음을 깨닫는다. 차원을 넘어선다는 것은 단순히 1+1+1이라는 계산이 반복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그 무엇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언어로 기술되거나 정량적으로 계산될 성질의 것도 아니다. 비록 운동을 포함하지는 않지만 Multi-Body-Problem에 나타나는 십 여 개의 점들의 관계를 거리와 각도와 높이로 규정하는-입체화하는 과정에서 나는 처음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복잡한 구조를 발견했다. 언제든 어느 점에서든 또 다시 새로운 축을 기점으로 회전할 준비를 하고 있는 이 구조물은 마음만 먹으면 이보다 더한 복잡성을 띌 수도 있다. 그러나 딴에는 무지하게 복잡해 보이는 이 구조도 자연에 널려있는 단순복잡성의 수 많은 예에 대한 어설픈 모방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 역으로 매우 복잡해 보이는 상태들의 이면에는 어쩌면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그러나 단순한 규칙성이 숨어있는 게 아닐까.